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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파온라인4는 뭔가 춘추전국시대 같음rank0249 프랭크램파드1기G5.22(월)조회 223비추천 0

중국 역사가 하 - 은 - 주 - 춘추시대 - 전국시대 - 진나라 등으로 이어지죠.

여기서 중국최초의 국가라는 <하나라>는 신화 속의 나라죠.

요, 순, 우 등등의 신화가 가득한 만든 역사죠.


실제로 산동성 지역에 있었던 <은나라>가 최초의 국가라고 봅니다.

그 유명한 한자의 전신인 갑골문자가 은허에서 발굴됨으로써

정식 역사로 인정받았죠.

은나라를 세운 민족이 동이족의 9족 중에 회족과 이족 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은나라 말기에 중국 내륙 - 황하강 상류에 있던 한족이 동진하여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세웠죠.


주나라는 호경(鎬京), 지금의 중국 섬서성 서안(한때는 장안이라고 불렀다)에

수도를 정하고 이어져 내려오다가 세력이 약해지면서,


전국 곳곳에 1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나라들이 생겼습니다.


이 때 주나라는 성주(成周:河南省 洛陽) 부근으로 수도를 옮기고

작은 나라로 전락하고 맙니다.

서안은 동쪽에 있었고, 낙양은 서쪽에 있었지 때문에

주나라 수도가 서안이었을 때는 동주라고 칭하고,

낙양으로 천도했을 때를 서주라고 하는데,

결국 서주도 작은 나라의 하나로 축소되었습니다.

 

이렇게 분열된 작은 나라들이 서로 싸우며 지낸 시기를 춘추시대라고 하죠.

그리고 이런 작은 나라들이 서로 싸우다가 결국 7개의 큰나라만 남게 되어

서로 전쟁을 한 시기를 전국시대라고 합니다.


이 전국시대에서 승리한 진시황이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라는 <진나라>를 세웠죠.

여기서 한가지 생각할 것은,

서로 분열하여 싸웠던 시기를,

100여개로 나누어 싸웠든, 7개 나라가 싸웠든

굳이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구분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겁니다.


그건 바로 주나라의 정통성입니다.

춘추시대에는 서로 싸울 때 자기가 주나라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고,

즉 주나라의 정통성을 위해 전쟁을 하였고,


전국시대에서는 주나라의 정통성이고 뭐고

내가 힘이 제일 쎄니 내가 천자가 되겠다는 논리로 전쟁을 한 것입니다.

춘추시대에서는 내가 주나라의 정통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 즉 적들은

정통성이 없고, 그에 따라 무식하고, 보잘 것이 없고, 못났다는 주장을 하죠.


이런 논리로 역사를 서술하는 것을 <춘추필법>이라고 합니다.

내가 정통성이 있고 너는 없다는 논리로 중국역사를 기록하는 것이죠.

이런 사고로 중국역사책을 쓰다보니

중국은 정통성이 있고, 나머지 변방민족, 국가는 정통성이 없는 야만으로 보고

그에 따라 역사서술을 왜곡하는 거죠.


이민족의 역사는 폄하하고,

자기들의 역사는 무조건 높이 평가하고 논리.

이것이 춘추필법이며,

이것이 일본의 역사왜곡보다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춘추필법, 이 내용은 사족이었습니다.


.......................................


보통 춘추전국시대가 시작되는 시점은 주 왕조가 낙양으로 천도한 이후로 봅니다.

(기원전 770년)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나누는 기점은 진(晉)나라의 대부였던

한(韓)· 위(魏)· 조(趙)씨가 진(晉)의 땅을 분할하여 각각 한(韓)· 위(魏)· 조(趙)의

삼국을 세워 독립한 시기입니다.

(기원전 403년)


춘추전국시대가 끝나는 시기는 진나라가 통일을 이룬 기원전 221년입니다.


원래 춘추시대라는 말은 공자가 쓴 노나라의 역사서인

춘추(春秋)에서 유래되었고

 

전국시대라는 말은 한나라의 유향이 쓴

전국책(戰國策)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이 있던 시대를

'삼국시대'라고 하는데 이 '삼국시대'라는 말이

고사성어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는 모두 여러 나라가 분립하여

수없이 전쟁을 치르고 투쟁을 벌이던 시절이었지요.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제자백가(공자, 맹자, 노자, 묵자, 상앙...)등의

수많은 사상가들이 나와 사상이 크게 발달하였지요.


춘추시대의 춘추라는 이름은 공자에게서 나왔습니다.

왜냐하면 공자가 '춘추' 라는 책을 저술하여 그때까지의 역사를

기록하였는데 그 춘추라는 책에 기술된 역사를 춘추시대라고

부르기 때문이지요. 전국시대에서 전국의 뜻은 '전쟁을 치르는 나라'

라는 뜻으로 온 나라가 전쟁상태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의 정확한 구분은

B.C 403년 진(晉) 나라가 분립하여 3국으로 쪼개진 사건을 경계로

그 이전을 춘추시대, 이후를 전국시대로 봅니다.


춘추시대의 시작은 B.C 770~B.C 403년 정도.

전국시대는 B.C 403~ B.C 221년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는 유사한 점도 많지만,

차이점도 있는데...


첫째로 주나라의 존재입니다.

춘추전국 시대 이전에

하나라(실존확인 안됨)--> 은나라--> 주나라로 이어지는데

춘추시대에도, 그리고 전국시대 초기에도 주나라는 존재하였습니다.

춘추시대는 주나라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여러나라들이 수없이

분립하였지만 여전히 주나라를 중앙의 종주국으로 인정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전국시대는 주나라의 존재가 무시당하고 묻혀버린 시절입니다.


둘째로, 춘추시대는 엄청나게 많은 나라들이 천하를 유리조각 쪼개듯이

수없이 난립하였다면 전국시대는 어느정도 지난 후에

7웅(진, 위, 조, 제, 연, 한, 초)으로

비교적 간단히 분립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제자백가의 출현에서도

춘추시대는 그야말로 셀 수 없는 수많은 사상이 나와 사상적으로

자유분방하였다면 전국시대는 그 출현이 좀 뜸해지고 사상적으로

자유스러움이 좀 둔화되어 갔지요. 그리고 춘추시대와 달리 전국시대는

유교가 널리 퍼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춘추시대는 거의 청동기를 사용하였다면

전국시대는 철기(철제무기)가 사용되었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결국 전국시대의 끝은 B.C 221년,

효율적인 법가통치와 진시황(진왕 정)라는 강력한 군주로 인해

진(晉)나라의 천하통일을 이룸으로써 끝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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