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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파온라인4 및 축구 일기rank0121 은빛수사슴1.29(토)조회 283비추천 0
지난 몇주간 종종 피파온라인 플레이를 했었다.

그런데 한동안 슬럼프?도 조금 있었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실점을 많이 안 한다고

언제 글을 쓴 이후부터 어느 시점부터인가 경기마다

실점이 많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막 깊이 분석할만큼

충분히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었기 때문인지

슬럼프가 있었던 듯 하다.


그러고서 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주섬주섬 주어진 카드들로 스쿼드를 메꾸거나

적은 규모 자본으로 카드들을 매입해 채우거나 해서

게임을 해오곤 하며 또 매체들을 통해 정보들을 얻으면서

대략 파악해본 결과, 센터백들을 소홀히 다루지 않았나

깨닫게 되었다. 막상 글로도 쓰지는 않았던 듯 싶다.


군현역복무시절에 어느 순간부터는 센터백도 하곤 했었다.

필자는 주로 사이드백을 하면서 축구를 해왔는데

신장이 작은데도 무슨 계기로 그렇게 하게 됐는지는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라 믿고 길게 안 쓰겠다.


막상, 두 명의 센터백 조합, 짝을 형성하는 건 쉬운 건 아니다.

(쓰리백 시 빌드업 분담 리베로?도 있으나 전에 쓴 듯 해 생략)

스토퍼, 스위퍼라는 용어에 해당하는 역할들이 있다고도 한다.

그래서 그 둘의 조합이 이상적이라도 하고

스토퍼 둘, 스위퍼 둘도 있다고도 한다.

일단 지금껏 필자 스스로의 포지션을 기억하기로 스토퍼였는지

스위퍼였는지, 좀 분류하기 어려운, 애매한 측면이 있다.

그것도 그렇지만 피파온라인4을 필자는 이팀저팀 옮겨다니며

해와서 사실 심혈?을 기울여 조합을 형성했다고 볼 수는 없다.

뭐 좀 팀컬러 도전과제 달성했다 싶으면 또 팀 옮기고 했으니..

그래도 현재 한국 국대는 몇 년 흐르며 조합이 안정화되었다고

하는 평가들이 있는 듯 하다. 간간히 대략 국대 소식을 보자면..

단지 필자가 첨언하자면 근래 보기에는 하프스페이스 공략을

효과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쓰리백을 쓰는 경우들도 

최상위팀들에서(실축) 있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접한 적은 있다.

해서 필자의 ABC스쿼드 중 하나는 쓰리백으로 해놓긴 했는데

몇주 전 운명의 상대(?)를 위해 짜놓고 대결 후에는 동기부여가

없어져 사실상 방치된 스쿼드라고도 볼 수 있다.

나름 재밌긴 했는데, 포백에 익숙해져 있다가 쓰리백을 쓰려니

꽤나 적응이 어려웠던 기억들은 있다.


동기부여라고 하니까 갑자기 생각나서 쓰는데

며칠 전 지난 주말?인가는 골 많이 넣으면 상대편이 아픈가?

그런 이상한 동기부여가 되다가 넣겠다느니 강한 상대와

진지하게 게임하겠느니 해서 경기들을 잘 이긴 기억들도 있는데

오늘은 원하는 목표들을 달성하려니 남은 시간들도

빠듯하게 애매하고 저녁부터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무슨 맨체스터에서 활동했던 과학적 사회주의의 대가

마르크스, 앵겔스처럼 갈 날이 있겠죠 드립을 채팅으로 치다가,

그것도 괜히 그런 채팅할 생각으로 막 치려 했는데

상대 선축으로 전반이 갑자기 시작되서 그냥 얼떨결에

막 게임도 하다가.. 시간에 쫓기듯이 플레이하니, 다시 말해

한 판 한 판을 신중하게 전술정비하면서 하지도 않의니

좋은 경기 결과들이 나올리가 없었다.


그러고서 문뜩 환영처럼 이런저런 영혼들이 묻는 게 들렸다.

'아니, 당신은 최고라는 영예에 도전하는 어려움이 뭔지,

최고에 도달한 경험들도 있으니 시간에 쫓기듯 괴로우리만치 

올인하며 인내하기도 하면서 무언가 포기해야 하는 교훈들을 

모르지도 않았을텐데, 어찌하여 지금껏 살면서 과일과 나무의

관계에 시간을 그렇게도 할애했던 것이오? 그것이 과연 

유의미한 시험이라 볼 수 있겠소?'

그러니 대답을 안 할 수 없었다.

'아니 그렇게 따지면 맨체스터 연고지 최상위 팀들을

거쳐온, 거쳐가는 선수들 중에도 그런 경우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러다 문뜩 필자가 한 때 머물던 신흥종교가 떠올랐다.

축구팀도 기억났다. 그리고 근래 깨우쳤던 부분들이 떠올랐다.

교단지도자들은 결국, 위와 같은 경우들에 해당하는 사안들로

꼬투리잡아, 필자가 거쳐간 노정에 엮여 있는 교단 내 

사건사고들의 책임을, 자신들의 부분적인 교리의 틀에 의거하여

일부분 필자에게 돌리려 암암리에 모의해 왔던 거라는 거였다.

그런데 신기한지 모르겠으나, 신본주의의 영원함이 유한함을

포괄하는 개념이겠다는 것은 좀 더 이전 시기에 깨우친 것이며

종교인들이 그러면 육적이다 유한하다 함을 등한시 홀대한 건

아무 책임 없는건가? 하는 잠재의식, 심경들도 스트레스라는

십자가의 과부하로 지금껏 필자 본인에게 결부되어 왔는가

문뜩 돌아보게 된다.


아닌 게 아니라 갑자기 성난 축구 관중처럼 보이는

영혼이 필자에게 따지듯 묻기 시작했다.

'좋소, 어디 한 번 따져봅시다. 종교를 축구에 비유해보면

관중석 안팎의 선을 경계로 관중석 안 필드가 마치 

종교운영인들이고 관중들은 교인들 혹은 구경꾼이라는 말이오?

그러면 축구에 관심 없는 이들은 마치 무지한 사망권 혹은 

이방인들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오?

축구의 신?들을 알고믿지 않으면 지옥인 거라고 종교적

교리를 비유하는 것이 공의로운 신의 사랑이란 말이오?'

하도 웅얼웅얼 시끄럽게 묻는 듯 하여 뭐라 답변할지

난감했다. 잠시 생각하다 말을 이었다.

'제가 근래 깨달은 것은 지옥급의 심각한 사안들인 마냥

유난떨지만 깊이 파악해보면 그렇지 않기도 하다는 것과

반대로 작은 사안이라도 간과하면 큰 코 다치는 것이

최선과 최악 모두 고려하는 신의 비밀이라는 거였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공격도 인간을 향한 신의 사랑이 될 수 있다

높은 데서 낮은 데를 향함이 될 수 있다 함이 아닙니까?

골이라는 목표는 낮은 방향이 될 수도 있다 함이 아닙니까?

골대 포스트 경계로 상단도 있고 하단도 있지 않습니까?

어쨋든 신본주의란 결국에는

고정관념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 의미다. 아닙니까?'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에 대한 상대의 재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축구가 경기장을 경계로

알고믿는 축구인과 아님이 나뉘듯 종교계의 천국이라는 경계를

두고 알고믿는 종교인과 아님 나뉘는 것을

다시 말해 경계선을 두고 엄격하게 인생들을 차별하는 것이

과연 공의로운 신의 사랑이라고 볼 수 있다고 여기는지

상대의 의사를 끝내 알 수 없었고, 그렇게 환영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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